백범 김구선생의 명언과 김구의 업적을 정리(요약)해보겠습니다.
백범 김구의 본명은 김창수입니다.
김구선생의 호는 백범. 연하 입니다.
김구(김창수)
한국의 정치가·독립운동가
1876년 8월 29일, 황해도 해주에서 출생 . - 1949년 6월 26일 사망.
자 연상(蓮上), 호 백범(白凡) 연하(蓮下)
백범 김구의 업적요약
백범 김구의 업적정리
▶1893년 동학에 입교하여, 해주에서 동학운동을 지휘하였다.
▶1894년 을미사변 때 일본인에게 시해당한 명성황후의 원수를 갚고자 일본 육군중위 쓰치다를 살해하고
체포되었는데 사형되기 직전 고종의 특사령으로 감형되었다.
▶백범 김구 선생은3 .1 운동 이 후에 상하이로 망명,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경무국장이 되었고, 1923년 내무총장, 1924년 국무총리 대리, 1926년 12월 국무령(國務領)에 취임하였다.
▶1929년 재중국 거류민단 단장을 역임하였고 1930년 이동녕·이시영(李始榮) 등과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을 창당했다.
▶백범 김구 선생은 1931년 한인애국단을 조직, 의혈청년들로 하여금 직접 왜적 수뇌의 도륙항전(屠戮抗戰)에 투신하도록 지도력을 발휘하였다.
▶백범 김구 선생은1944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에 선임되었다
▶1945년 8 .15 광복때 귀국하셔서 한국독립당 위원장으로 모스코바삼상회의 성명에 대한 반박과 신탁통 치반대를 주도하며 극우파로 활약하였다.
▶1946년 2월 비상국민회의의 부총재에 취임하였고, 1947년 비상국민회의가 국민회의로 개편되자 부주석이
되었다.
▶1947년 6월 30일 일본에서 운구해온 윤봉길·이봉창(李奉昌)·백정기(白貞基) 등 세 의사의 유골을 첫
국민장으로 효창공원에 손수 봉안하였다.
▶1947년 11월 국제연합 감시하에 남북총선거에 의한 정부수립결의안을 지지하면서, 그의 논설「나의 소원」에서 “완전자주독립노선만이 통일정부 수립을 가능하게 한다.”고 역설하였다.
▶남한만의 단독선거가 결정되자 1948년 2월 10일「3천만동포에게 읍고(泣告)함」이라는 성명서를 통하여
마음속의 38선을 무너뜨리고 자주독립의 통일정부를 세우자고 강력히 호소하였다.
▶백범 김구 선생은 분단된 상태의 건국보다는 통일을 우선시하여 5·10제헌국회의원선거를 거부하기로 방침을 굳히고 통일정부수립을 위한 남북 협상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했다.
▶백범 김구 선생은1949년 6월 26일 안두희가 쏜 총탄에 암살되었다.
김구의 사망일은 1949년 6월26일 입니다.
▶1962년 백범 김구 선생께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출처:두산백과
백범김구의 명언에 관해 알아보겠습니다.
김구선생이 남긴 명언(어록)
결국 모든것이 나로 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
나를 다스려야 뜻을 이룬다.
모든것은 내 자신에 달려 있다.
갈만큼 갔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얼마나 더 갈 수 있는지
아무도 모르고 참을 만큼 참았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얼마나 더 참을 수 있는지 누구도 모른다.
돈을 맞춰 일하면 직업이고 돈을 넘어 일하면 소명이다.
직업으로 일하면 월급을 받고 소명으로 일하면 선물을 받는다.
눈길을 걸어갈 때 어지럽게 걷지 말기를.
오늘 내가 걸어간 길이 훗날 다른 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집은 좁아도 같이 살 수 있지만
사람 속이 좁으면 같이 못 산다.
상처를 받을것인지 말것인지 내가 결정한다.
상처를 키울것인지 말것인지도 내가 결정한다.
그 사람 행동은 어쩔 수 없지만 반응은 언제나 내 몫이다.
얼굴이 잘생긴 것은 몸이 건강한 것만 못하고
몸이 건강한 것은 마음이 바른 것만 못하다.
칭찬에 익숙하면 비난에 마음이 흔들리고
대접에 익숙하면 푸대접에 마음이 상한다.
문제는 익숙해져서 길들여진 내 마음이다
어릴 때는 나보다 중요한 사람이 없고
나이 들면 나만큼 대단한 사람이 없으며
늙고 나면 나보다 더 못한 사람이 없다.
거칠게 말할수록 거칠어지고
음란하게 말할수록 음란해지며
사납게 말할수록 사나워진다
지옥을 만드는 방법은 간단한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미워하면 된다.
천국을 만드는 방법도 간단하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사랑하면 된다.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에 도전하지 않으면
내 힘으로 갈 수 없는 곳에 이를 수 없다.
사실 나를 넘어서야 이곳을 떠나고
나를 이겨내야 그곳에 이른다.
어떤 중요한 일을 처리할 때에는
그것이 현실이냐 비현실이냐를 따지기보다는
먼저 그 일이 바른 길이냐 어긋난 길이냐를 따져서 결정하라
자유와 자유 아님이 갈리는 것은
개인의 자유를 속박하는 법이 어디에서 오느냐 하는데 달렸다.
자유 있는 나라의 법은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에서 오고
자유 없는 나라의 법은 국민 중의 한 개인 또는 한 계급에서 나온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의사를 알아보는 절차 또는 방식이다.
나는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의 구차한 안일을 추구하지 않겠노라.
산고를 겪어야 새 생명이 태어나고
꽃샘추위를 견뎌야 봄이 오며
어둠이 지나야 새벽이 온다.
무릇 한 나라가 서서 한 민족이 국민생활을 하려면 반드시 기초가 되는 철학이 있어야 하는 것이니 이것이 없으면 국민의
사상이 통일되지 못하여 더러는 이 나라의 철학에 쏠리고 더러는 저 민족의 철학에 끌리어 사상과 정신의 독립을 유지하
지 못하고 남을 의뢰하고 저희끼리는 추태를 나타내는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우리의 부(富)력이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强)력이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하나님께서 물으신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오직 대한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하고 물으시면 나는 또 "우리나라의 독립이오." 할 것이요.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세 번째 물으셔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 "내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우리나라가 독립하여 정부가 생기거든
그 집의 뜰을 쓸고 유리창을 닦은 일을 해 보고 죽게 하소서 !
백범 김구의 기념관 주소는 서울 용산구 임정로 26 입니다.
백범 김구선생의 명언과 김구의 업적을 정리(요약)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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